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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오랜만에 아침에 눈 뜬 토요일

태생이 야행성 인간인지라 벌써 300일이 넘게 출근을 하고 있음에도 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때문에 주말은 늘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늘어지게 자는 것이 미덕이었는데 오늘은 토요일인 것을 깜빡하고 

8시에 망했다고 소리지르면서 깼다.

하지만 왠지 공기나 햇빛, 분위기, 고요한 집안 분위기를 미루어 보아 오늘은 주말임을 깨달았다.


결혼식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나이로 스물일곱. 인터네셔널 하게는 26.

어른들은 적당할 때 잘 가는거라고들 하시지만 요즘 분위기상 약간 이른 결혼이다.

면조도 29(만 28)이니까 기반이고 경험이고 둘 다 썩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시집장가를 간다.


결혼소식을 알리면 다들 하는 질문이 '왜 이렇게 일찍해?'인데

'왜'라는 마법의 의문사로 시작하는 질문은 항상 대답하기가 까다롭다.


일단 왜 결혼을 하는걸까?

100% 기쁘고 착하고 좋은 이유라면야 당당하게 말하겠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

물론 면조와 같이살고 싶은 것이 가장 주되고 큰 이유지만,

사실은 절반정도는 내 이기적인 이유만으로 선택한 문제해결책이 결혼이다.

어쩌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20대 중반의 한국여자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문제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책중에 가장 바람직하고 건설적인 것이 결혼이었다면 너무 계산적일까.

물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얻는 것이 있으면 그로 인해 상반되는 것을 또한 얻게 마련이지.

예를 들면 그리움과 해방감, 자유와 책임 등등의 것들.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기위해 수반되어야 하는 희생파트에 대해선 각오가 필요할 것 같긴하다.


왜 일찍 결혼을 하는걸까?

사실 '일찍'이란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대적이라서 막상 나는 그다지 일찍이란 생각은 안든다.

다만 최근 주위를 둘러보면 한창 연애를 시작하는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보이는데

그들을 보다보면 '아 남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 나는 결혼생활을 시작하겠군.' 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자체에 대해선 별 생각이 안든다. 그래봤자 몇개월에서 몇년 차이고 시간개념이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왜 지금 결혼을 하는걸까?

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살면서 나름대로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늘 한가지만 생각했다.

할 수 있을 때 하자.

대부분 그런 큰 일들은 억지로 시간을 많이 내야하고, 적지 않은 노동을 동반하고,

또한 그동안 열심히 모아둔 전재산을 탈탈 털어내야 하는 일들이었다.

캐나다 가는 것이 그랬고, 남미 여행이 그랬고, 대학 복학이 그랬고, 이번엔 결혼이 그렇다.

기회라는 문에서 '탈칵'하고 잠김장치가 풀어지는 소리가 난 것을 듣자마자 결정을 하고 문을 여는 편이다.

딱히 목표하던 바는 아니었더라도 이 때를 위해서 그간의 준비가 있었던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고민없는 선택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나 대비 없이 맞아야 할 변화들에 대해선 나도 약간 걱정은 되지만

하나하나 따져 볼 지능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가끔 투덜대기도 하긴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내린 결정이라서 금방 그만두곤 한다.


사실은 이 모든 결정은 결국 운이 좋아서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이 때 이 남자와 결혼하도록 하늘이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일이 술술 풀렸다.

이렇게 순리대로 일이 진행되는데 결코 앞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조차 생긴다.

사실 결혼은 인륜지대사. 나 혼자만으론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내 자유의지와 결정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축복인가.

감사해요. 갇. ㅎㅎ


한달앞두고 착잡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글로 써보고 싶어서 일기를 써봤는데

싱숭생숭 착잡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결국은 '아 나는 이정도면 우왕굿이야'하는 자위글이 된 것 같긴 하지만

별 고민할 것도 없는 일들가지고 엄살부리는 것보단 나은 결론이리라 믿으며

씻고 나가야지.


어제 미선언니의 po쿠폰wer으로 이니스프리에서 잔뜩 팩을 사와서 하나 붙이고 잤는데 

아침에 얼굴이 너무 촉촉해서 깜짝놀랐다.

불쌍한 내피부에 좀 더 관심을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