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바보같은 질문을 향하는 태도는 어린 나로 하여금 세상에 겁을 집어먹게 만들었다.
물론 나도 의도를 모르겠거나 했던 말을 반복해야 하는 질문을 듣는건 너무 싫지만,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어린애라면 꾹 참고 성실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어릴 때 신학교에 다니는 이모가 성경이야기를 동화로 그린 시리즈를 사주셨다.
그림도 멋지고 이야기도 재밌어서 반복해서 읽다보니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는 대부분 알게 되었다.
이모 따라 교회에 가면 아는 이야기를 목사님이 하시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신을 믿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 어른들이 읽는 성경책의 첫장 삽화가 눈에 들어왔다.
오, 어른들이 보는 성경에도 그림이 있구나, 참 잘그렸네, 뭘 그린걸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동화책에서 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사막 배경에 여러사람이 그려져 있고, 지도자같은 사람이 앞에 있었다.
나는 이모에게 자랑스럽게 '이 그림은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그린거네요?'하고 물어봤고, 맘 속으로는 당연히 칭찬을 들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모는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어디서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이라고 무섭게 외치셨다.
학교를 다닐 때는 아니었고, 아마 5-6살 쯤 되었던 나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충격에서 좀 벗어날만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한참동안 그 일을 곱씹었었는데, 난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는데 내가 한말이 틀렸음이 곧 거짓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몹시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 외에도 있었을 일련의 경험들으로 인해 '틀린 말' 혹은 '틀릴 것이 뻔한 질문'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생겼다. 자연히 나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다른 대부분의 한국인들처럼.
종교와 수학이 특히 그랬다.
사람들은 종교와 수학에 관해서는 항상 흥미롭지만 아리송한 이야기들을 했다.
배경과 이유에 대해 용기내어 물어보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건 몰라도 돼, 넌 그냥 믿어야(외워야) 해.'
가끔은 '그런 것을 질문하는 것 자체가 죄야'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나는 그렇지 않은 것들에 비해 질문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 두가지, 즉 종교와 수학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없어졌다.
내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친절하게 어려운 개념을 설명해 줬던 선생님은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다닌 미술학원의 알바생이셨던, 머리길고 두꺼운 뿔테를 쓴 중앙대학교에 다니는 여자대학생 선생님이었다. 난 아직도 그 선생님이 설명해준 대로 빛을 이해하고, 형태를 인지하고, 그림을 그린다.
수학의 경우는 다행히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반 수학을 알려주셨던 송은경 선생님이 원리에 대해 책임감있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중학교 때 다 배운거라며 소홀히 하지 않고 정말 하나하나 꼼꼼히 설명해 주신 탓에 중학생 때는 풀 의지도 없어서 항상 반타작하던 수학점수가 100점에 가까워졌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내 종교에 대한 호기심, 의문에 대해 그럴싸한 답변을 해주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종교에 대해서는 다들 어딘지 위축되어 있고, 깊은 원리에 대해 언급하길 꺼린다.
예를들어 신은 자비롭다고 했으면서 왜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지옥불에 떨어뜨리는 비정한 선택을 하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나보고 믿음이 부족하다고 한다 -_-; 뭔 동문서답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보는 미드가 그런 나의 오랜 의문과 불만을 약간 해소해 주고 있는데, 매튜 맥커너히가 염세주의자(?) 형사로 나오는 '트루 디텍티브'다. 종교에 반응하는 인간의 태도를 시니컬하게 분석하거나, 절대적 믿음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아주 기가막힌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용기있게 지적인 어조로 써내려가는 작가가 참 대단하다. 온 세상의 시청자를 향해 '물어서는 안될' 질문을, 이야기의 화두를 던지는 것이니까.
세상에 몰라도 되는 것이 있을까?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로도 죄가 되어버리는 것이 정말 있을까?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만큼 질문 자체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텐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