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권 진득히 읽기가 힘든 요즘이다.
시나리오도 벌써 삼주째 한글자도 못쓰고 있다.
음악 틀어놓고 귀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시간도 몇달 째 갖지 못했다.
영화도 한달에 무료로 볼 수 있는 한 편만 가까스로 챙겨 본다.
낙서도 안한지 오래 되었고,
사진 찍어놓고 SD카드에서 빼내지 못한 것만 반년치가 쌓였다.
신간을 챙겨보던 만화책도 벌써 몇권이나 밀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이런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계속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가 정해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가끔 한두 시간 자유시간이 생겨도 어쩐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앞으로의 일을 위한 준비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대학이란 파라다이스를 졸업하고 나면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어리광이 되었나?
원근이가 공장에서 밤샘 작업까지 하면서 힘들게 일하면서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내가 지금 그나마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고 있는 것도 원근이보다 조금 더 공부를 잘하고
학업, 졸업, 취업 등에 똑똑하게 처신했기 때문일까?
내가보기엔 원근이도 미대에서 그림 열심히 그리고 나름대로 알찬 시간을 보냈을텐데.
그렇다면 나보다 더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왜, 무엇 때문에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자고 있는걸까?
솔직히 일 잘하고 돈 많이 버는 것 말고는 별 매력도 없고 대화가 즐겁지도 않은 사람들이 태반인데,
사회의 발란스가 왜 이따구일까?
어딜 가서 무얼 해야 아늑하고 느긋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고싶다는 내 생각을 이야기 하면 어른이나 선배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말 한명도 빠짐없이, 비현실적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냥 귀를 닫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