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Journal

휴식과 위안이 필요할 때 수사물을 찾는 이유

mingsss 2025. 4. 20. 16:40

햇빛쬐는 고양이 둘

 

현실의 생활에 딱히 불만은 없으면서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아무래도 사업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잘 안 되는 것이 누구 탓은 아니다. 욕심 탓에 조급한 마음이 들뿐이다. 가끔씩 멈춰 서서 정리하고 짚을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항이 있다면 짚고 저지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이 한 번 내려지면 그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니까.

 

지치고 휴식이 필요 할 때 수사물을 즐겨 본다. 내가 보는 수사물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경찰이거나 법조인이다. 사법 절차를 통해 이야기에서 악으로 포지션 된 범인들을 처벌한다. 물론 미스터리 소설의 볼거리는 처벌 부분이 아니다. 수사가 진행되며 초반에는 몰랐던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체, 관계, 트릭을 하나하나씩 알게 되는 재미로 읽는다. 개인이 복수하는 형태의 미스터리물이 있음에도 경찰수사물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법이란 가이드라인과 수사조직이 가진 제한에 따라 수사하는 인물이 가진 능력의 한계가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이다. 수사를 하는 쪽이 만능에 가까울수록 재미가 없다. 나는 히어로물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범인이 주인공 역할을 하는, 즉 추격물과 혼합된 수사물도 있다. 범인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면 범죄자의 심리를 좀 더 파고들 수 있기에 무척 흥미롭다. 하지만 역시 몰랐던 것을 하나씩 들춰내며 알아가고 점과 점을 연결하는 정통 추리극이 더 좋다. 

 

대부분의 수사물들은 구조가 똑같다. 피해자를 둘러싼 약간의 배경설명이 이뤄지고, 바로 피해자는 실종 또는 해를 입느다. 모티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건의 경우 피해자 캐릭터가 공들여서 설명되기도 하지만 수사 진행 과정이 설명되려면 아무래도 극 중반 이전에 피해자는 역할을 다 한다. 수사를 하는 인물의 직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단 수사를 하는 인물은 이 죽음이 자연사인지 아니면 자살 또는 타살인지를 판단하려 하고, 판단에 이르게 된 근거들을 모아 보고서를 작성해서 사건을 종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건을 빨리 종결짓는 편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더 이득이 되지만 호기심,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 범인에 대한 반발심과 정의감 등이 동기가 되어 주인공들은 결국 과로를 택한다. 여담이지만 영국이나 독일 수사물을 보면 형사들이 중간에 끊고 인수인계 하고 교대근무를 통해 일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수사물은 냅다 연속근무로 피로를 이겨가며 일하는 장면만 본다. 수사는 ‘왜’ 또는 ‘어떻게’에 대해 명확히 답이 나오지 않는 부분들을 단서로 삼아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현장을 찾아가 꼼꼼히 살펴보거나, 과학수사의 보고서를 들여다보거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찾아 인터뷰를 한다. 디자인을 찬찬히 뜯어보고,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유저 인터뷰를 통해 사용자의 패턴을 파악하는 등 내가 하는 일과 겹쳐 보이는 지점도 많이 발견한다. 슬슬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면 소설은 더 이상 전처럼 노골적으로 수사장면을 묘사해 주지 않는다. 전자책을 읽기 때문에 끝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나는 이 묘사의 차이를 보고 ‘곧 밝혀지겠구나 ‘ 감을 잡는다. 이후는 범인과 대면, 동기와 트릭을 설명하고, 범인이 반박하거나 역심문을 하거나 하다가 결과적으로 인정하며 마무리된다. 이때가 논리가 맞아 들어 감에 따른 카타르시스와 범인의 심리묘사가 폭발하는 장면인데 이 피날레의 쫄깃함을 위해 그동안 작가가 어떤 정보를 보여주고, 어떤 정보는 숨겨왔는지 기억 속 장면이 빠르게 교차편집되며 내 뇌 속 흥분물질도 폭발적으로 분비된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고, 중독을 일으킨다.

 

세상엔 정말 많은 범죄수사소설이 있다. 내가 꽤 즐겨 읽는 편이기는 해도 아직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수십 배 많이 있을 것이다. 어찌나 위안이 되는 사실인지 모른다. 위에서 패턴을 묘사했듯이 대부분 비슷한 전개인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수사관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기도 하고, 피해자가 나와 너무 비슷해서 깊은 연민을 느끼거나 반대로 아주 나쁜 인간이라 잘 죽었다 싶기도 하고, 범인이 완전히 처음 보는 유형의 악마기도 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다양한 배경설정이 매번 또다시 나를 빠져들게 만든다.

 

가끔 뛰어나게 재밌다고 느낀 소설들 중에 작가가 직접 몸담았던 직업현장을 녹여낸 것들이 많다. 전직 변호사였던 사람이 쓴 변호사가 수사하는 추리소설은 정말이지 법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약속의 예술인지 느끼게 하고, 전직 택배기사가 쓴 소설에서 효율적인 물류 화물 운송 시스템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만약 내가 언젠가 추리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는다면, 사용성이 오묘한 제품 디자인이 트릭으로 등장하려나? 사인 그래픽으로 폭발범이 예고장을 보내려나? 범인에게 들키지 않고 구조요청을 보내기 위해 미디어 담당자가 자간이 미묘하게 조정된 자막을 내보내려나? 이런 상상을 하면서 노는 것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