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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조 칭찬

mingsss 2014. 5. 1. 13:20

머리를 비우고 몸을 움직이는 집안일을 하다보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문득 든 생각이 난 남들앞에서 남편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인에게는 아끼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지만 남들 앞에서는 내자랑은 해도 -_-; 남편자랑은 잘 안한다.


반면 남편은 회사에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 칭찬을 많이해서 애처가로 소문이 나있다고 한다.

대단한 칭찬도 아니고, 요리를 해줬는데 맛있었다든지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잘했다든지 하는 남들이 들으면 대단히 공허할 칭찬들 ㅋㅋ


그런데 같이 지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난 항상 처음의 내 선택이 정말 탁월했구나 감탄하게 된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지만 내가 가진 부족한 점들과 비교했을 때 퉁 칠 수 있는 수준이다.


면조의 첫인상은 '센스 없고 촌스럽지만 선량하고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 이었다.

직관이 발달한 나의 능력이 여지없이 발휘된 정확한 인상이었다. ㅋㅋ

사실 나름 디자인 전공에, 이걸로 밥먹고 살아야 하는데 센스 없고, 촌스러움은 매우 큰 단점이다.

반면에 셈이 정확하고 이해가 빠른 면조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창의력보단 지구력이 필요한 작업을 주로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같이 지내면서 알게된 면조의 치명적인 단점은 기초 지식이 공부 싫어하는 중학생 수준이라는 점. 

분명 중고등학교 때 다 배운건데 아주 까맣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기가 찰 지경이다.

반면에 어른이 되어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찾은 정보는 오타쿠 출신답게 쓸데없이 자세히 알고 있기도 하다.

또 엄청나게 겁쟁이고, 우유부단함이 몸에 베어 있다는 것.

남들한테 싫은소리 들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혼자 해버리고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안해버린다.

예를들어 몸이 아파서 본인이 소집한 약속을 미루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이 투덜댈까봐 두려워서 그냥 무리해서 진행하고, 결국 아무도 재미 없고 걱정만 끼치는 모임이 되어버리게 만든다.

또 물건을 잘 망가뜨린다. 그리고 고치는 것을 잘 못한다. 때론 사물에 대한 구조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때론 사람말을 잘 안듣는다. 경청하는 표정인 면조에게 A란 사람이 B=C란 문장을 이야기 해주면, 면조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럼 혹시 B=C일 수도 있나요?'란 질문을 해서 A가 당황하는 장면을 몇번 목격했다.

뭐 이런 단점들을 퉁칠 수 있을 만큼 내 단점들도 만만치 않긴 하다.


그 외에는 칭찬할 점이 많은데 가장 큰 것은 역시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착하든 착하지 않든간에 버릇이 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욱 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지난번에 그린카 이용 중에 능숙하지 못한 상담원이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했을 때도, 무척 화가 나 보였지만 정중하고 부탁하는 단어를 쓰면서 전화를 끊는 것을 보고 뉘집 자식인지 참 가정교육 잘 받았단 생각을 했다.

정말 이건 가정교육을 통해 배우는 것이 맞는데, 어릴 때부터 항상 청소해주시는 분, 경비 아저씨 등 우릴 위해 일해주시는 분들께 꾸벅 절하며 인사하도록 교육받았다고 들었다. 

단순히 '안녕하세요'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전부 성선설을 믿고 있을 것만 같은 core의 선량함에서 나온다.

(이부분은 나와 좀 견해가 다른 듯 하다. 난 성악설을 믿는다. 누구나 자기 편한 상태를 원하지만 교육을 통해 본능을 억제하고 살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법없이 살아야 한다면 면조가 우선시하는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명, 사랑, 우정, 가족, 의리, 헌신, 정의, 평등 ...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가장 바른 가치를 우선시 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런점이 크게 의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도와주려는 편이므로 나 또한 가장 가까운 사람인 입장에서 도움을 톡톡히 받고 살고 있다.

그리고 신체적인 능력이 좋다. 이 부분은 내가 타고나지 못했기에 가장 부러운 부분이다.

운동신경 뿐만 아니라 눈썰미가 좋아 길도 잘 찾고, 역할이 다른 같은 영화배우를 잘 알아본다. 주의깊게 들었던 음악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간주만 들으면 알아차린다. 요를의 울음소리를 먼저 이해하게 된 것도 면조다.


왠지 칭찬보다 욕을 더 열정적으로 쓴 기분이 들지만 면조는 이렇다.

좋을 때도 있고 꼴보기 싫을 때도 가끔 있다.

싫을 때는 나의 특성상 여과없이 '너 이런 점 완전 싫어!!'라고 외치는데 그럴 때마다 허허허 웃는다.

하지만 사실은 면조가 하는 잘못은 전부 위에 나열한 것들 중 하나여서 충분히 예측 가능하기에 어쩐지 안전함을 느낀다. -_-; 

그리고 소귀에 경을 읽어봤자 내 입만 아프므로 그냥 넘어가버리면, 착한 면조는 내 그런 행동을 고마워 한다.

약간 찝찝한 면은 있지만 그럭저럭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결혼이란 것은 참 피곤하고, 커플의 삶에 있어 유쾌하지 않은 이벤트를 많이 만드는 제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결혼상대가 면조여서 천만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