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
이렇게 긴 제목, 그리고 내용에 관한 아무런 힌트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 제목을 소리내어 읽으면,
뭔가 대단히 허세롭고 공허한 쉬어가는 작품의 냄새가 난다.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고, 서점에 가면 이 무지개 같은 책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별로 관심도 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보고 나서 더이상 아무도 이 책을 찾지 않을 때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에서 구해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알라딘에서 책을 사야할 필요가 생겼고,
적립금도 쓸겸 다른 책과 함께 주문해서 보게 되었다.
이걸 읽기 전에는 한참 허영만의 '타짜'를 1부 부터 4부까지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정말 오랜만에 단기간 집중해서 작품을 본 경험이었고, 타짜가 소름끼치게 재밌어서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그 관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미 배송이 되어 있던 이 책을 집어들었고,
책을 느리게 읽기로는 누군가에게 뒤지지 않는 내가 무려 일주일도 안되어 다 읽었다.
사실 중반 이전까지는 출퇴근길에만 잠깐잠깐 읽어서 그다지 속도가 빠르지 않았는데
어제 하루밤만에 책의 3분의 2를 단숨에 읽었다.
덕분에 새벽까지 잠들지 않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남은 20여페이지 가량을 마저 읽었다.
그리고 한동안 누워서 여운에 잠겼다.
하루키의 예전 소설들을 빠짐없이 다 읽은건 아니지만,
대부분 주인공 캐릭터들의 이미지에 공감하지 않는 한 그 맛이 나지 않았는데,
지난번 1Q84와 이번 다카키 쓰쿠루는 정말이지 이야기 전개 자체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해변의 카프카'였는데,
어쩐지 이번 소설로 인해 순위를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여하튼 이 더운 여름날 이렇게 빠져들어 볼 수 있는 작품이 많다니 참 즐겁다.
다음 읽을 책도 이미 가지고 있다. 다자키 쓰쿠루와 함께 주문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역사소설.
(DVD증정 이벤트 때문에 예정에 없이 주문한 책인데 초반부가 아주 당돌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허영만의 '각시탈'도 그렇게 재미있다니 꼭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