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이사를 마쳤고, 너무나 많은 할 일이 남았다.

원래는 이사를 위해 약 3주간의 여유기간이 있었다. 기존 아파트의 계약이 9월 15일까지였기 때문에 큰 짐만 옮겨두고 나머지는 천천히 가구가 완성되는 대로 하나씩 옮기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졌다. 다음에 들어올 입주자가 살고 있는 WG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긴 탓에 입주자가 순식간에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 입주하게 해 달라는 그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아파트에 들어갈 때 우리도 그랬다. 하루라도 빨리 입주해야만 하는 상태였고, 그래서 집안의 온갖 고쳐지지 않은 부분을 억셉트 하고 들어갔었다. 고양이가 긁어둔 벽을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복구해놨지만 기타 벽에 긁힌 자국들은 미처 다 칠하지 못했지만 다음 입주자분은 흔쾌히 남기고 가라고 하셨다.

 

이사 당일에 친구 커플이 도와주러 와서 날 보자마자 'omg, you look so tired'라고 했다. 말 그대로 정말로 피곤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만에 정상적인 업무를 하면서 짐을 싸려니 잠시도 쉴 틈 없는 한 주를 보내야 했고, 그 와중에 새 집의 벽 페인트칠을 하러 왔다 갔다 하느라 정말이지 너무도 피곤했다. 짐이 생각보다 정말 정말 많았다. 5년 전 독일에 올 때 27인치 캐리어 두 개, 작은 기내용 캐리어 두 개 안에 사람 둘과 고양이 둘의 짐이 전부 들어있었다. 가구나 주방도구들 같이 여기서 샀어야만 하는 생필품을 제외하더라도, 잡동사니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음에 기함했다. 안 쓰는 것은 많이 버리려고 노력했지만 또 은근히 다 쓰고 있는 것들이었다. 도대체 그동안 나는 어떤 사람이 된 것인지? 

 

짐을 나르는 일도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9시에 와준 친구들과 넷이서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늦은 오후 5시쯤 나르고 조립하는 일이 다 끝났다. 베드 소파가 정말 정말 무거웠고,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나의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우릴 너무너무 힘들게 했다. 문득 이삿짐센터에서 사람이 막 열명씩 와서 나르는지 이해가 되었다. 빠르고 신속하게 짐을 옮기는 편이 덜 피곤하고, 정리와 분해-조립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포장이사만 해봤고, 여기 올 때도 고작 캐리어 네 개뿐이었으니 난생처음으로 직접 이사를 해보는 경험을 한 것이다. 돈은 많이 아낄 수 있었지만 다음부터는 반드시 그냥 돈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사를 마친 밤의 카오스

63㎡의 작은 거실 포함 2룸 아파트에서 그 두배에 달하는 넓이의 하우스로 이사를 오니 그렇게 많은 짐을 가지고 왔음에도 없는 가구도 많고 이래저래 사야 할 것이 많다.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품목도 많으니 하나씩 결제해 나가면 된다. 또한 벽 등, 작업실 사이드보드, 서랍장 등은 계속 뭘 사면 좋을지 찾아봐야 한다. 아무래도 한 번 사면 절대로 바꾸고 싶지 않은 것들이므로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또한 한동안 관리가 안되어 정글이 된 정원도 좀 관리해야 하는데 문제는 아는 것이 없어서 하나씩 배우면서 해야 한다. 일단 가지치기와 잔디 깎기, 잡초뽑기가 시급하다. 또 쓰레기 관리 방식도 단순했던 아파트에 비해서 여긴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것을 우리가 직접 관리해야 하니 좀 복잡해졌다. 계획을 잘 세워봐야 하겠다. 또 지하와 2층을 오르내리며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드는 줄 미처 생각을 못했다. 동선을 잘 생각해서 체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게 계획도 해봐야 한다.

 

난장판인 새로운 집에 퀵적응 후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요를레이의 미모 

새로운 집에 요를레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적응했다. 이미 첫날 밤에 여기저기 탐색을 마치더니 살짝 흥분한 상태지만 한결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자기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의자에 누워서 편안하게 쉬었다. 당연히 밥도 잘 먹고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잘 갔다. 문제는 쫄보 중의 쫄보 노르망디였다. 이사 나오는 날 아파트에서부터 소음과 진동, 친구들의 말소리가 무서워서 숨어만 있었는데 여기 와서는 완전히 혼비백산한 상태로 구석에 최대한 쭈그려있었다. 짐 옮기기가 끝나고 탈출 위험이 없는 환경이 되어 지하의 고양이 격리용으로 쓴 방을 열자마자 요를은 뛰쳐나와 여기저기 탐색했지만 노르망디는 좀 더 깊은 구석을 찾아 숨어버렸다. ㅠㅜ 무슨 짓을 해도 안 나와서 춥지라도 말라고 평소 쓰던 담요들과 캣타워를 주변에 싹 둘러주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하실 구석은 너무 추웠는지 새벽에 용기 내서 2층의 침실로 올라왔다. 평소에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닌데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와서 내 다리 사이에서 자더라.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추웠을까. 다행히 하루가 지나니 낮에만 이불속에 숨어있고 저녁에는 약간 당당해져서 밥도 먹고 돌아다닌다. 두 번째 아침이 밝아오고 있는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노르망디만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닌가 보다. 나도 첫날밤과 둘째 날 밤인 어제 연달아 잠을 설쳤다. 심신이 너무 피곤하면 잠도 잘 못 자는 것일까? 오늘 눈을 떠보니 4시가 약간 넘어 있었다. 본의 아니게 야행성이 되어버린 노릉이 심심했는데 내가 깨서 잘되었다 싶었는지 너무나 살갑게 부비작대며 계속 만지라고 독촉했다. 더 자보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어서 캄캄한 작업실에 들어와 불을 켜고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지금은 어쩐지 두 시간 여가 지나있고(일기 쓰는 중간중간 고양이들에게 불려 나가느라) 바깥이 약간 밝아졌다.

 

사야 할 것 들을 하나씩 결제하며 할 일을 하다 보면 오늘 저녁엔 엄청 졸려서 푹 잘 수 있겠지. 멜라토닌도 다시 챙겨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