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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새 집에서의 일주일

거실 한켠엔 여전히 쌓여있는 짐이있고 빌려온 식탁 위에서 식사를 한다.

주택에서의 삶은 아파트의 삶과는 다른 점이 정말 많다.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하나씩 체험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일단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관리해야 하는 구역이 많이 넓어졌다는 것. 지하, 1층, 2층과 함께 2층 테라스, 앞뜰과 뒤뜰까지 외부공간도 상당히 크다. 기존에 살던 곳에 비해 서너 배 정도는 늘어난 면적이어서 주택 치고는 큰 집이 아닌데도 많이 벅차게 느껴진다. 게다가 외부 일은 해가 떠있는 시간에 모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낮동안 회사일을 하는 나는 집의 안과 밖을 관리할 시간이 이른 오전과 저녁식사 이전밖에 없다. 따라서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정말 부지런히 움직이게 된다. 지금은 이사 약발로 좀 더 부지런해진 감이 있지만 하루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집 정리와 더불어 겨울 대비 등 할게 정말 많은 시즌이기도 하다.

 

이사 와서 바뀐 오전 루틴

아침형 인간이 되기엔 너무나 힘든 나도 요즘엔 비교적 일찍 일어나고 있다. 물론 동네의 다른 부지런한 분들에 비하면 대낮에 일어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8시 전에 침대에서 나와서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고, 세안을 마친 후 어제부터 모인 빨래 거리를 모아서 1층으로 내려오면서 오전 청소 준비를 해야 한다. 오전 중에 빨래를 해서 널고 청소기를 돌려두는데 이때가 그나마 내 몸이 덜 움직이는 때다. 새로 장만한 로봇청소기 엘비스가 1층을 청소하는 동안 나는 세탁기를 돌리고, 2층에서 오전 업무를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2층을 살짝 정리하고 내려와서 업무를 하고, 그동안 엘비스는 2층을 청소하게 한다. 청소가 끝난 1층에 빨래를 널고, 배가 고파져 오면 점심준비를 한다. 2층 청소까지 다 마치고 청소기를 정리하면 점심 식사를 하면서 조금 쉰다. 내 업무 특성상 오후에 회의가 몰려 있어서 퇴근 전까지 오후 시간에는 일을 집중해서 해야 한다.

 

일기예보의 중요성

나는 주로 재택근무를 하고 독일 날씨는 워낙 변덕스럽기 때문에 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버릇이 없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주변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잘 알고 있고, 스몰토크 화제로 반드시 등장하는 게 날씨 이야기여서 내가 스스로 확인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정원을 가지게 되면서 일기예보의 중요성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변덕스러운 평야지대의 대륙성 기후에서 정확한 일기예보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비예보가 있는 날은 하루 중 어느 때라도 반드시 비가 오므로 대비를 해야 한다. 어마어마한 수의 식물이 생기면서 기온도 중요해졌다. 이사 후 잠시 정원에 놔둔 실내 식물들이 단 며칠 만에 타 죽는 걸 보면서 -_-;;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에 당황해서 널어둔 빨래와 화분들을 안으로 옮기면서 깨달았다. 일기예보를 반드시 확인하고 살아야겠다. 지금은 타 죽어버린 야자 줄기를 정리하고 두 개였던 야자 화분을 하나로 합쳐서 다시 실내로 들여놓고, 실내 식물들은 전부 구출(야외에서 안으로 대피시켰으니 구입?)했다. 이 모든 일을 '비가 오지 않는' 해가 떠있는 동안 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하더라도 계획과 기다림이 필요했다. 순간만 살아도 되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 것은 저녁 루틴을 잘 계획해서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오후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면 정원일과 저녁 준비를 위해 1층으로 내려오는데, 이때 다시 올라갈 필요가 없도록 마신 물 컵과 휴대폰, 버릴 쓰레기나 빨래 거리 등을 다 가지고 내려와야 한다. 마당 쓸기, 자동 물 분사기가 안 닿는 곳에 직접 물 주기, 잡초뽑기, 가지치기 등의 정원일을 잠시 하고 들어와서 저녁 준비를 한다. 이때쯤이면 사실 별로 힘이 없어서 저녁은 대충 먹는다. 다행히 설거지는 식세기가 대신해준다. 어마어마한 도움이다. 로봇청소기와 식세기의 도움이 없었다면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을 다 먹고 나면 현관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고양이 밥을 많이 주고, 자기 전까지 마실 물을 물병에 챙겨서 가지고 올라간다. 그래야 목말라서 내려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2층에 올라간 뒤에는 집안일은 이제 잊고, 샤워 후 내 작업실에서 좀 시간을 보내다가 잔다. 그러고 보니 아직 티비를 설치하지 않기도 했지만, 지하에 미디어룸이 있을 예정이고 티비를 볼 시간이 딱히 없어서 앞으로도 주중에는 티비를 거의 안 보고 살게 될 것도 같다. 왜냐하면 지하에서 티비 보다가 자러 가려면 두 층을 올라가야 하니까. ㅋㅋㅋ

 

드디어 장만한 으리으리한 캣타워! 그런데 아직 고양이들이 외면하고 있다.

 

아무튼 생각보다 훨씬 더 자잘하게 할 일이 많은 주택생활은 정말 럭셔리한 삶이지만 그만큼 나를 갈아 넣어야 하는 삶이기도 하다. 무거운 것도 많이 들고 그래서 그런지 손목에 계속 통증이 있다. 그래도 경험해보기 이전엔 절대 알 수 없었던 것이니만큼 이 상황을 좋은 배움의 시간으로 여기고, 혹시나 적성에 맞다는 걸 알게 되면 다음번엔 - 더 할 일이 많을지도 모를 - 해변가 주택에 사는 것을 꿈꿔보고 싶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해변가는 특히 더 위험하려나? 아무튼 다음 주에는 집안이 더 많이 정리가 되기를. 오늘 오후에는 정원일만 좀 하고 다음 주를 위해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