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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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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엔 반드시 빨래를 해야 해 하루 종일 맑고 화창한 토요일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8개월 만인가?! 진짜 그렇진 않겠지만 체감은 그렇다. 침대 시트 빨래를 해야 한다는 알림이 한 달도 더 전에 떴었는데 햇빛에 말릴 수 없는 날씨 때문에 한 달을 넘게 미뤄뒀었다. 엄청나게 오랜만에 눈 떠서 해가 화창한 걸 보자마자 시트를 벗겨내 빨래를 했고, 하루 종일 햇빛에 바삭바삭하게 말렸다. 극세사 목욕가운도 빨아서 옆에서 같이 말린 덕분에 지금 샤워 후 입고 있는데 기분이 정말 좋다. 원래도 단조로웠지만 코비드로 인해 더더욱 단조로워진 내 생활중에 그나마 위안과 치유가 되는 행위는 이런 maintanence를 위한 집안일들이다. 물건이든 공간이든 아껴서 깨끗하게 잘 사용하는게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일단 제대로 관리를 하려면 관리대상의 ..
춥고 더디다 오늘 정말로 오래간만에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았다. 해도 떴다. 다음 주 일기 예보를 보니 드디어 밤 기온이 10도보다 높이 올라가는 날들이 찾아온다. 가장 추운 5월로 기록되는 올 해는 봄이 와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미뤄져 있다. 일 년 중 회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이니만큼 그동안 일만 열심히 했다. 집안에 틀어박혀서 일만 하고 지내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식사와 집 정리를 마치고 요가하고 씻고 조금 놀다가 잠이 들면 하루가 끝난다. 너무 단조로워서 어쩐지 슬픈 나날이다. 여러모로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와중에 기쁜 일은 있었다. 삼 년 넘게 쓴 랩탑을 바꿀 타이밍인데 최근에 비디오 작업을 많이 한다는 것을 핑계로 엄청 고사양의 맥북프로..
쉬면서 본 일드 세 작품 감상 - 고잉 마이 홈, 호타루의 빛,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나는 고등학생 때 일본 음악과 일본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한 2-3년 정도 푹 빠져서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고는 더 이상 보지 않았었다. 그때 고쿠센이랑 트릭이 한창 방영하던 때였고, 좋아하는 배우나 작가를 따라서 더 오래된 작품도 많이 찾아봤었다. 그러고는 아주 오랫동안 몇몇 많이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는 봤지만(오센, 심야식당, 한자와 나오키,...) 도무지 일드를 보는 게 취미라고 말할 수는 없는 삶을 살았다. 끊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예상하기를 대학교에 가서 바빠졌고, 캐나다에 가게 되어 인터넷 스트리밍 등을 통해 동아시아의 컨텐츠를 보기 어려워져서 그런 것 같다. 대신 내 관심사는 영어권 나라의 컨텐츠로 옮겨갔었다. 캐나다에서는 한동안 호러, 미스터리, 좀비 영화들을 샅..
쉬어야 한다는 몸의 신호 내 체력과 정신력의 나약함이 마음에 안 든다. 특히 체력이 약하다. 나는 매일 요가든 유산소든 스트레칭이든 운동을 하고, 몸에 덜 나쁜 음식을 영양소 생각해서 잘 챙겨 먹는다. 그래서 좀 나아진 것을 느끼긴 하지만 여전히 애초에 건강하게 타고난 사람에 비하면 약하다. 겉보기에는 튼튼해 보이고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은데 그건 컨디션 관리를 위해 노력해 온 덕분이다. 하지만 내 뜻과 관계없이 날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은 춥고 저기압인 날씨에선 모든 방면으로 반응속도가 뚝 떨어진다. 그런 날씨가 지속되고 일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기라도 하면 머리도 안 돌아가고 소화기관도 잘 안 움직인다. 배터리 약한 노트북이 전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갑자기 멋대로 절전모드로 들어가는 것처럼 내 몸도 작동을 잘 못하..
어린이 스케일, 어른 스케일, 휴먼 스케일 지난주에는 어린이날이 있었다. 어린이날 휴일과는 관계없는 독일에서 유난히 더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고, 야근도 많이 한 일주일을 보냈다. 어린이날이 지나면 바로 찾아오는 어버이날을 위해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그냥 습관대로, 그리고 아직까지는 가장 좋아하시는 방법인 계좌이체를 통해 마음을 전했다. 사랑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세요. 어릴 때는 왜이렇게 하늘을 많이 올려다봤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은 요가하면서 반쪽 상체를 비틀어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시선도 천장을 향하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귀로 듣고 나서다. 어지간해서는 천장과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사는 지금과 달리 어릴 때는 늘 고개를 쳐들고 다녔다. 어른들이 앞 좀 보고 다니라고 하는 핀잔을 매일매일 들었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11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3년차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며 안락의자에 앉아있다. 때는 바야흐로 역병의 시대, 작년부터 쭉 재택근무만 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벌써 디자인 일을 꽤 오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헤아려보니 어느새 십 년이 넘어 있는 것이다. 와우. 물론 내 커리어는 커리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다. 디자인하다가 때려치우고 경영학 공부하고, 다시 도저히 경영학 전공을 살린 일은 하기 싫어서 디자인 필드로 돌아왔다. 대신 한창 인기가 좋은 UX필드로 살짝 방향을 틀어 전직했다. 현재는 독일의 클라우드 회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타이틀은 UX 디자이너긴 하지만 경영학에서 배운 지식도 써먹을 겸 프로덕트와 서비스 기획도 하니까 스스로를 프로덕 디자이너로 칭하고 있다. 놀랍..
Time is relative, indeed 어른이 될수록 인내심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런데 겉보기에는 참을성이 더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 이유가 내가 살면서 경험을 통해 습득한 것 중에 때 와 때 사이의 간격, 즉 시간에 대한 감각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설명하는 내가 너무 부족해서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예를 드는 편이 낫겠다. 나는 세 살 때의 기억이 있다. 커다랗고 뭉툭한 모양의 티비 앞에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들뜬 분위기의 방송을 봤었다. 88 올림픽을 대표하던 노래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노래는 계속 계속 반복해서 나왔기 때문에 어린 나도 외울 수 있는 정도였다. 진짜로 가사를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노래 자체가 완전히 각인되어있다. 이때의 나는 자고 일어나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