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ling/From Design to UX

안식년 계획

안식년을 가지고 싶다. 2026년에 내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니까 그 기점으로 안식년을 가져보기로 정해볼까. 2년이 남았다. 너무 긴가? 사실 당장 내년에 그만두고 싶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올 해는 안된다. 아빠랑 남동생과 여행을 해야 하니까. 올해 매달 내 통장에 꽂히는 x000유로 남직한 돈은 우리 둘과 고양이 둘 네 가족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 준다.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일 자체를 통해서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임기응변으로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지만 내 스스로를 사용자 경험 전문가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함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는 같은 직군에게도 매 년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전문성을 쌓는 것이 의미가 있는 분야인지 모르겠다. 커리어에 대한 이런 회의감을 수년째 가져왔다. 용기 있게 결단을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일을 했을 때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꾸준하게 해서 전문성도 쌓아가고 싶다. 그런 분야로 전직을 하거나 단순히 일이 일로 느껴지지 않는 즐거운 일을 꼭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식년, 즉 공백기를 버티며 교육이나 취미활동 등 재충전에 쓸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다 때려치고 새로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뭘 선택해야 단순히 개인적 만족감 외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지 궁금하다. 잠깐 앞으로의 인류를 상상해 볼까. 내가 가열하게 경제활동을 해서 자산을 저축해야 할 앞으로의 20여 년간 여전히 모두들 먹고, 마시고, 사회생활을 하고, 안락한 주거 환경을 원하며 살아갈 것이다. 시장중심 경제구조는 계급의 차이를 애매하게 더 벌려놨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자본가를 이해하는 것은 나로서는 어렵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밀레니얼-젠지 세대를 거쳐가며 일을 전보다 적게 하고 대신 똑똑하게 하고 싶어 한다. 이전세대에서 보여준 비효율적인 것들을 좀 거부하고, 줄어드는 출산율만큼 예상되는 적은 수의 고학력 노동력으로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지식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살게 될 것 같다. 핀테크 접근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에 단타성 투자는 이제 거의 필수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현금흐름을 주업(회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무역의 증가로 국가의 개념이 흐릿해질 거라 상상했었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 국가의 정책, 환율, 여전히 큰 문제인 수송, 관세, 환경오염등의 문제로 내수/지역 경제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는 세대가 젠지가 아닌가 싶다. 무지를 담보로 한 용감함으로 일을 저지르는 세대는 결코 아니다. 가능한 인터넷으로라도 많은 정보를 얻고 성패 가능 여부를 따져보고 나서 실천하는 습관이 우리~다음세대에겐 있다고 생각한다. 저성장 고물가 시대에 물질적 소비보다는 경험적 소비가 더 쉬울 것이다. 평소에는 일도 하고 부업도 하고 건강 챙기고 가족 챙기며 바쁘게 살다가 여행을 가거나 호캉스를 가는 '휴식'이 좀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관광 산업이 경험과 접목해서 좀 더 바뀔 것 같다. 내가 도전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자연이 생활 반경에 없는 삶일수록 급변하는 기후위기의 지구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오늘의 자연을 즐기는 것의 우선순위는 높아질 것 같다. 배움을 위한 여행에도 투자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것 같다. 독일로 쏟아져 들어오는 유학생들이 그런 맥락 아닐까? 또한 사교생활의 모습도 바뀌리라 생각한다. 이미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놀던 문화는 많이 사라졌음을 체험한다. 단순히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은 아니리라. 사람들은 전보다 더 별 일 없이 살고 싶어 한다고 여겨진다. 언제까지 살 지는 몰라도 사는 동안 아프지 않고 싶은 거다. 한국사람들은 집에서도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통계도 재미있었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외부에서도 혼자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의 창구는 온라인에 있다. 우리는 점점 우연히 만나게 되는 즐거움보다는 계획을 통한 효율적이고 확실한 즐거움을 더 중요시한다. 넷플릭스의 카탈로그 화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점, 차라리 쇼츠를 많이 소비하는 점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일 거면 어디에 들일지 신중하게 선택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기반한 것 같다.

 

나를 관찰해보면 프로젝트 단위의 일을 압도적으로 좋아한다. 자잘히 쪼개진 타스크들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면 머리가 맑아진다. 일을 시작하면 되기 때문이다. 큰 그림을 그리는 단계는 즐거우면서도 괴롭다. 그래서 목적과 결과가 정해진 프로젝트 단위의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치우며 구체화시키는 편이 훨씬 즐거움을 지난 몇 년간 회사에서 일하며 깨달았다. 일을 벌이기 전에 임팩트랑 효과에 대한 짐작을 적어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적어두는 것에 대한 중요함은 이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깊이 공감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일의 즐거움을 이용한 어자일 메서드도 좋다. 작더라도 결과가 빨리 나오고 이전과 비교할 수 있다. 데이터가 쌓이는 것은 즐거움이다. 내 동기부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감정은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는데' 하는 기대감이다. 단점은 이미 시장에서 너무 잘하고 있는 케이스를 보면 의기소침해져서 더 이상 하기 싫어진다. 또 나는 한 번에 큰 프로젝트 한두 개, 작은 프로젝트 한두 개, 총 4개 미만의 일을 하는 편이 좋다. 모드 전환에 에너지가 많이 들고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하나에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있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이상은 있어야 한다. 내가 좀 더 발전시켜야 할 부분은 상대에게 필요한 정보가 뭔지 멈춰 생각해 보고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더 설명해 줄 정보가 없나 생각하고 설명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적게 공유한다.

 

안식년을 맞이한다면 뭘 하고 싶은가?

  • 한국과 독일에 사는 삶을 이용하는 작은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싶다. 한국을 출장으로 가보고 싶다.
  •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온라인 마케팅에 대한 책을 좀 더 읽어서 전문가의 용어와 문법을 구사하고 싶다.
  • 내 생각의 흐름을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다.
  • 내 취미 요리와 베이킹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시도하고 기록하고 싶다.
  • 상품개발-론칭-판매 과정을 end to end로 해보고 싶다.
  • 뭔가를 벌리고 실행 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싶다.

아휴 돈 많이 들겠네. 그러면 이제부터 올해 돈과 시간을 어떻게 써야 빠르면 내년부터 이 것들을 할 수 있을지 계산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