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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너무 일만 하면서 사는 것 같다

회사의 업무가 점점 늘어난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많아져서 재밌었는데, 이제는 버거운 마음이 들고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책임이 점점 늘어나고, 매니저가 풍기는 뉘앙스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잘 해냈을 경우 어느 정도 승진 같은 보상도 주어질 것 같다. 다만 업무 시간 동안은 내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 외에는 더 잘하려고 애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회사가 잘 된다고 내게 직접적으로 콩고물이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고, 업무가 늘어나니 스트레스도 늘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어지고 자세도 안 좋아지는 등 내게 끼치는 악영향이 더 많다. 그리고 예년처럼 결국은 보상이 째끔 늘어난 보너스 정도로 그친다면 애쓰기는커녕 나도 파업전선에 끼고 싶은 마음이다. 안타깝게도 이 업계는 운항/운송업처럼 사람이 파업한다고 경영진이 콧방귀를 뀌는 업계도 아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커다란 회사니까 어느 정도 눈치를 봐서 아프면 쉬어가고 임팩트가 크지 않은 일은 좀 늦춰도 티가 덜 난다.

 

재작년에는 일이 너무 재미 없고,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하나도 없어서 불만이었는데, 그 불만이 해소되고 나니까 딱 1년 정도 즐겁게 일했고, 이제는 그 시기가 지나서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어느 정도 새 조직이 파악이 되고, 재미있는 점에 가려져서 미처 못 봤던 지겨운 점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여전히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물론 업무시간 외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지는 않지만 퇴근 후에도 일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환기시킬 용도로 올해 초부터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렸는데 그 일이 훨씬 더 재밌음에도 잘 진행을 못 시키고 있을 만큼 회사일을 고민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좀 처연한 기분이 든다. 스토리는 재미가 하나도 없고 더 진행해 봤자 궁금할 것도 없는데도 게임성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계속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지지부진한 게임에서 못 빠져나오는 기분이다.

 

이렇게 회사에 동기부여를 못하는 것은 일과 권한의 오너십 분배 구조와 그 때문에 차등하게 받게 되는 보상 때문이다. 흔한 이야기다. 내가 열심히 일을 탁월하게 해낸다고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미미하다. 상사나 동료들이 해주는 칭찬은 물론 기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열정같은건 내게 없다. 생계형 노동력 제공자에게는 돈과 휴가가 보상이다. 나는 돈보다는 휴가가 더 좋지만 휴가 일수를 더 받을 수 있는 제도는 별로 없다. 돈을 의미 있게 더 많이 준다면 정원사나 청소 전문가를 부른다든지, 내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의미 있는 액수를 더 받아내기가 어디 쉽냐. 또 한 가지 떨쳐낼 수 없는 불만은, 내가 보기에는 미팅에서 뻔한 말만 반복해서 읊는 경영진이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도 어쨌든 고용된 노동자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퇴근 후 다른 것을 할 힘이 없어 축 늘어져 유튜브만 보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나서 몰려오는 허무함이 또 버겁다. 회사 일은 결과적으로는 허무하다. 내 윗사람의 윗사람의 윗사람의 윗사람의 윗사람이 시키는 일을 조직표의 아랫단으로 하나씩 내려가면서 각자의 해석이 더해져 각종 의미와 무의미와 욕망으로 부풀려진 골을 내가 넘겨받는다. 막단의 내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그 모호한 '골'에 대한 해석을 한다. 실제로 필요한 변화를 구체화시키고 중요도나 긴급도 순으로 분류해서 하나씩 실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 우리 팀은 분기별/연도별 목표치를 달성한다. 칭찬받고 우리 보스가 다음 해의 예산을 따낸다. 그러나 내 월급 인상률은 물가인상률을 따라잡기 버겁다. 우리 팀에 배정된 그 많은 돈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 걸까?

 

이러한 권태로움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니까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겪을 때마다 참으로 좝같구나. Job. 다시 심기일전하고 사이드 프로젝트에 열정을 불살라서 어느 정도 성과적 재미도 보고 싶다. 그러려면 뭔가 계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휴가 같은 쉼표가 좀 도움이 되려나?